바나나의 죽음
어느 화요일, 바나나가 죽었다
어느 화요일, 바나나가 죽었다 2025년 9월 9일 화요일, 용인의 밤은 늦여름의 풀벌레 소리로 질척였다. 나는 창가에 서서 아파트 단지의 불빛과 검은 하늘의 경계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바나나의 죽음은 소리 없이 찾아왔다.
폭발도, 비명도, 그 어떤 전조도 없었다. 그저 '사라짐'이었다. 가장 먼저 세상에서 '노란색'의 채도가 희미해졌다. 길 건너편 은행나무 가로수는 마땅히 물들었어야 할 황금빛을 잃고 누렇게 바랜 종이처럼 시들어 보였다. 아이의 손에 들린 풍선은 레몬색이 아니라 병든 상아색이었고, 신호등은 초록과 빨강 사이를 건너뛸 뿐, 그 중간의 빛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 다음은 맛에 대한 기억이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떠올리려 애썼다. 껍질을 벗겼을 때 손에 남던 그 미끈한 감촉, 혀를 감싸던 뭉근하고 달콤한 과육의 맛을. 하지만 기억은 젖은 비누처럼 손아귀에서 빠져나갔다. '달콤하다'는 형용사는 남았지만, 그 달콤함이 무엇을 가리켰는지에 대한 실체는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머릿속 사전에서 '바나나'라는 단어의 페이지가 조용히 찢겨 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홀린 듯 식탁 위 과일 바구니를 보았다. 사과와 포도알 사이, 분명 무언가 있었던 자리가 어색하게 비어 있었다. 그곳은 텅 빈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수정액으로 지워진 듯한 '공백'이었다. 시공간에 난 작은 흉터처럼, 그 자리의 윤곽은 흐릿하게 일그러져 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순간이 왔다. 그것은 거대한 종말이 아니라, 우주가 내쉬는 가장 조용한 한숨이었다. 전 세계 모든 인류의 뇌리에서 '그것'의 마지막 잔상이 동시에 증발하는 순간. 수십억 년의 진화가 낳은 그 부드러운 곡선과 색, 맛과 향기가 일제히 '없었던 일'이 되었다.
세상은 아무 문제 없이 계속 흘러갔다. 아무도 무엇이 사라졌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오래된 동화책 속 원숭이의 손에는 이제 오렌지가 들려 있었고, 앤디 워홀의 유명한 판화는 캠벨 수프 캔만을 보여주고 있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기억에서, 유전자 깊숙한 곳의 갈망에서 바나나는 완벽하게 소멸했다.
나만이 이 거대한 상실의 유일한 목격자였다. 하지만 이제 나조차도 내가 무엇을 잃었는지 설명할 수 없다.
가끔, 무심코 입맛을 다실 때, 나는 혀끝에 머무는 유령 같은 단맛의 정체를 궁금해한다. 한때 온 세상을 가득 채웠으나 이제는 이름조차 없는, 그 부드럽고 노랗던 슬픔의 정체를.